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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질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오가며, 신체와 사물이 관계맺는 양상을 탐구한다. 순환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본래의 용도와 가치를 잃은 인공 문명 속 객체(사물)들을 재사용 및 재구성 하여, 존재 가능성을 품은 사유적 풍경을 만든다. 실제 물질을 다루는 공간 설치와, 가상 공간을 통해 또 다른 생태계를 만드는 일을 병행하며, 이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방향의 관심사에

기반한다.

 

#Part 1. 인간의 몸을 호출하는 인공(人工) 환경

 

신도시와 재개발 지역에서 살아오며, ‘공사장’은 나에게 익숙한 삶의 모습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살게 된 건물의 옆 건물이 철거되고, 다시 지반을 다지고, 새로운 건물이 건축되는

일련의 ‘공사 과정’을 매우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었는데, 이는 마치 낯선 생명체의 약동하는

내부를 면밀히 해부해 본 것과 같은 생경한 경험이었다. 이후 무의식중에 적응하며 살아왔던

당연했던 주변 모든 인공 환경은 새삼 낯선 것이 되었다. 문명 아래 끊임없이 도시화가 진행

중인 이 곳은, 당연하게도 인공의 재료, 구조, 사물로 이루어진, ‘인공물’의 환경이었다. 그리고

나의 신체는 탄생 이후 끊임없이 이것들과 관계맺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구축해온 인공 환경이 내 몸의 특정한 움직임을 뒷받침한다고 느꼈고, 인공물이 가진 형태를 새롭게 주목하게 되었다. 인공 구조물의 형태, - 도로의 넓이, 창문의 크기, 천장의 높이, 나아가 일상 사물의 형태; 책상의 높이, 침대의 넓이 까지도 - 모든 ‘인공물’은

인간의 신체를 위한 것으로, 신체에 알맞게 디자인 되어 신체가 특정 목적에 따라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제작되었다. 언뜻 신체가 주체적으로 움직이도록 발명된 인공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역으로 이러한 사물들의 실용적 형태가 나의 몸으로 하여금 특정한 움직임, 행동, 생각까지도 유도하며, 자신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하게 만든다고 느낀다. 나아가 그들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고자 우리의 신체를 선동하는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이렇듯, 객체(客體), 대상(對象)

이라 생각했던 인공물의 의미가 뒤바뀌고 관계의 역전이 일어나는 순간을 경험하고, 스스로를 사용자 혹은 주체적 위치에서 끌고 나오게 된다.  ‘나는 의자에 앉아 컵에 따른 물을 마셨다.’  

 와 같은 단순한 문장을 '의자는 내 엉덩이와 등을 그의 표면에 닿게 했으며, 컵은 내가 물을

그 오목한 형태에 담게 하고, 내 손을 그 적당한 크기의 고리에 넣어 자신의 몸을 들어올리게

했으며, 자신에게 담긴 그 물을 내 입으로 가져가게 했다.’  와 같이 읽게 되고는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감각은, 일방향적이었던 나(의 신체)와 인공 환경의 관계를 재구성했고, 인공물들을 마치 의식을 가진 주체처럼, 나 자신은 그들이 호출한 결과이자 객체처럼 느끼며, 외부의 인공 세계가 마치 다른 미지의 존재가 이룬 독립적인 생태계와 같이 느껴졌다. 인간 중심적 시선에서 당연시 되어 오던 존재의 규정에서 벗어나, 새롭게 존재할 가능성의 세계를 상상하게 된다.

#Part 2. 순환의 한 과정으로서의 물질성의 죽음, 그 이후 가능한 미지의 생태계

 

 나는 자주 물질(物質)이 가진 한계성을 느낀다. 매일같이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죽은 각질,

머리카락, 쌓이는 먼지를 보며, 매일 몸들의 죽음을 겪는다. 일상적 붕괴, 지속적이고도 사소한 죽음의 경험은 내 신체를 넘어 나를 둘러싼 외부의 물질 세계까지 확장되어, 모든 물질들은

일시적 순간을 사는 물질 존재, 즉 일종의 동족임을 깨닫게 된다.

 

일상 사물과 구조물을 넘어, 발을 딛고 있는 이 단단한 아스팔트 땅 조차도 영원할 수 없으며,

언제라도 붕괴될 가능성이 있는 결코 견고하지 않은 것임을 깨닫고, 현재 유효한 사회 시스템, 견고한 신념 또한 언젠가 무효화 될 수 도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한다. 그러나 각질이 탈락된 자리에 다시 살이 나고, 건물이 철거된 공터에 다른 건물이 들어 서듯, 무너지고 있는 동시에

또다시 새롭게 재생된다. 이 반복적인 풍경은 물질의 세계가 순환하고 있음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이 순환은 재생 혹은 재활용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붕괴와 죽음 이후 다른 무언가가(데이터 혹은 또 다른 존재의 형태 까지도)될 가능성까지 포괄한다.

 

‘물질의 죽음’을 순환의 한 과정으로 느끼는 것은, 물질의 죽음 이후 가능할 미지의 세계와 존재 방식에 대한 상상으로 연결된다. 일련의 작업에는 쓸모가 다해 버려진 -죽음을 맞이한- 사물, 큰 인공 구조물에서 떨어져나온 파편, 각질, 흙과 같은 것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하는데, 그들은 그들만의 주기(Cycle)를 가진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물질성의 죽음 이후 가능한

미지의 생태계를 상상하는 것은, 무의미한 움직임을 반복 생산하는 사물들, 붕괴된 인공물들이 이룬 자연, 가상 공간으로 이주한 존재, 몸이 없는 곳, 데이터 세계에서 탄생한 새로운 존재 등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한다. 특히 나날이 확장하고 있는 가상 세계는 역시 인공의 세계지만,

물질의 존재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그런 세계로, 물질성의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상상의 한계를 자극하며 작업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결국, 나는 주위의 익숙한 인공 환경과, 그 환경 내에서 나의 몸과 긴밀하게 관계맺는 인공 사물들을 낯설게 인지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견고하게 여겨지는 현 인공 물질 기반 문명의

붕괴와, 그 문명 내에서 절대적 객체로 존재하는 인공물들이 또 다른 주체가 될 수 있을 미지의 세계에 대해 상상한다. 이러한 상상은 작업 내에서 ‘몸(물질적 존재)의 죽음’에 주목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신체를 소거’하는 방식으로 시작되는데, 때문에 매체와 무관하게 드러나는 작업 속

일련의 풍경들은 다소 황량해 보이기도 한다. 언뜻 디스토피아적으로 느껴지는 나의 세계에는, 사실 죽음을 비관적인 시선이 아닌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리는 새로운 시작으로 바라보는 조금은 낭만적인 태도가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인공 물질 포화 상태의 현 세계에 대한 시선과, 현재 확장하고 있는 가상

세계에 대한 상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물들과 사물의 시선에서 바라본 인간, ‘몸’이라는 물질적 존재가 어떤 영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함의한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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